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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無盡是兩頭語 諸祖因以不立言
末代兒孫弗戶牖 一花五葉失眞傳
유와 무를 다투어 말함은 모두 양쪽 끝에 치우친 말일 뿐이니,
역대 조사들은 이 때문에 애써 말을 앞세우지 않았네.
말세의 후손들은 그 문중의 길조차 알지 못하여,
한 꽃 다섯 잎으로 이어진 참된 법맥마저 잃고 말았도다.
이 작품은 추사 김정희가 초의 의순에게 지어 보낸 시이다.
김정희와 초의의 첫 만남은 1815년(을해) 겨울, 눈 덮인 수락산 학림암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초의는 선암사 출신의 고승 해붕 전령海鵬 展翎을 모시며 그곳에서 겨울을 나고 있었고, 김정희는 유학에서 돌아온 뒤 불교에 대한 자신의 견처를 확인하고자 해붕을 찾았다가 초의를 만나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김정희는 해붕과 함께 『금강경金剛經』의 '공空' 사상과 '각覺'의 문제에 대해 치열한 법거량法擧量을 나누었으며, 초의는 곁에서 이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김정희는 학림암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초의와 깊이 대화를 나눴고, 떠날 때 해붕이 써준 게송은 이들의 인연을 더욱 단단하게 해주었으며 오랜 우정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후 초의는 한양의 명사들과 교류하며 학문적 지평을 넓혀갔고, 김정희는 초의를 통해 조선 불교의 살아 있는 정신과 마주하게 되었다. 특히 초의가 우리나라 최초의 다경茶經으로 평가되는 『동다송東茶頌』을 짓는 과정에서, 김정희의 고증학적 조언과 차에 대한 안목은 우리 차의 우수성을 논리적으로 입증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차를 매개로 이어진 이들의 교유는 더욱 긴밀해졌고, 불교 교리와 학문적 문제를 둘러싼 치열한 비평과 토론도 끊이지 않았다. 스스로를 ‘병거사病居士’라 칭하며 유마거사維摩居士의 삶을 이상으로 삼았던 김정희는 초의의 견처가 미진하다고 여길 때마다 날카로운 비판을 아끼지 않았으며, 초의에게 승려로서의 본분과 더불어 학문적 정밀함까지 갖출 것을 요구하였다.
1840년 김정희가 제주로 유배되면서 두 사람의 우정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9년의 위리안치 기간동안 초의는 김정희에게 차를 보내며 위로하였고, 그를 만나기 위해 험한 제주 바다를 다섯 차례나 건넜다. 김정희는 초의와 함께 차를 나누고 경전을 논하며 유배 생활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김정희와 초의는 서로에게 스승이자 제자였고, 가장 혹독한 비평가이자 가장 따뜻한 위로자였으며, 두사람의 관계는 진정한 지성적 동행이 무엇인지를 전해준다.
출품작은 이러한 교유 속에서 김정희가 초의에게 보낸 시편 가운데 하나이다.
이 시에서 김정희는 유有와 무無, 언어와 침묵의 문제를 통해 선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고, 조사선祖師禪의 핵심이 말과 형식에 갇히지 않는 데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말세의 후손들이 조사선의참뜻을 알지 못한 채 껍데기만 좇음으로써 ‘일화오엽一花五葉’으로 상징되는 선의 정통마저 잃어버렸다고 탄식한 대목은, 당대 불교에 대한 그의 비판적 인식과 깊은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은 두 사람이 나눈 교유가 단순한 친분을 넘어 서로의 사유를 단련하고 정신적 깊이를 더해간 치열한 지적 동행이었음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